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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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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랑시 행복구 동행동 AMC] 지은이의 기나긴 레이스
등록일 : 2018.12.24

[뉴스매거진 Vol.577] 사랑시(市) 행복구(區) 동행동(洞)

 

지은이의 기나긴 레이스

 

“오징어 젓갈이 먹고 싶어요.” 어느덧 금식 3주째다. 물 한 모금조차 삼켜 본 지 오래. 지은이는 영양제 주사로 버티는 중이다. 먹으면 그대로 몸 안 어디선가 출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딸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우리 애 뭐라도 먹이면 좋겠어요….” 금식은 시작일 뿐. 열일곱 살 지은이는 집, 학교, 친구, 외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하나씩 지워가는 중이었다.

 

마지막 달리기             

지은이는 마라톤 선수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생 구간 마라톤 대회에서 입상한 실력파로 키 큰 언니들도 트랙 위에선 그녀의 뒤꽁무니만 따르는 신세였다. 지은이는 두 오빠와 축구하느라, 감독님이 잘 뛴다니까, 공부보다 재밌어서 매일 뛰고 또 뛰었다. 유독 배가 아팠던 그 날도 오빠와 병원까지 달렸다. 그것이 지은이의 마지막 달리기였다. 동네 병원에서 진행된 복강경 수술. 남들은 2~3일이면 퇴원하는데 지은이는 일주일 넘도록 병실에 남았다. 퇴원 후에도 복통은 계속됐고 혈변과 객혈이 순차적으로 발생했다. 입에서, 코에서, 배꼽과 항문에서도 한번 피가 나면 멈출 줄 몰랐다. 또다시 배가 아파오자 지은이는 더 큰 병원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복강경 재수술을 받고 3개월간 입원했지만 뚜렷한 출혈 이유는 들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지은이가 의식을 잃고 깨어났을 땐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된 뒤였다. 그때가 지난해 7월. 또다시 CT, MRI, 내시경 검사 등이 이어졌다.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완쾌 환자의 사연을 볼 때마다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저 사람은 무슨 병인지 금방 찾아냈을까? 나도 저 사람처럼 언젠간 나을 수 있을까 싶고요.” 다행히 소아종양혈액과 김혜리 조교수는 지은이가 13번 응고인자 결핍증이 의심된다고 하였다. 출혈이 멈추지 않는 유전적 결함이었다. 가능성이 있는 병명을 들은 것만으로도 그간 답답했던 마음이 뚫리는 듯 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을거란 기대가 앞섰다. 지은이의 고생을 익히 아는 교수님도 빨리 치료해보자며 힘을 북돋아 주었다. 응고인자를 주입하고 가까스로 퇴원이 결정됐지만 집에 가는 길에 또다시 쓰러졌다. 지은이는 병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지은이네 가족 이야기              

지은이의 입원이 길어지며 경황이 없을 무렵, 엄마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다섯 번 째 아이였다. 당시로선 새 생명의 기쁨도 사치였다. “남편이랑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요. 그래도 이미 뱃속에 자라난 생명인데 낳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죠. 막내 낳자마자 몸조리가 뭐예요,

바로 지은이한테 왔어요.” 엄마는 갓난아이를 안고 지은이 옆을 지켰다. 아무리 씩씩한 지은이라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환자였다.

“저 혼자 병실에 있을 때 화장실에 가려다 쓰러지면서 옆 침대에 부딪힌 적 있거든요. 1리터 정도 피를 토할 때도 있고, 병원 산책하다가 객혈이 시작되면 병실로 빨리 돌아와야 하니까 저는 엄마 없으면 안 돼요.”

엄마가 병원에서 지은이 병간호와 육아를 책임지는 동안 아빠는 돈을 벌며 집에서 세 아들을 돌봤다. 이산가족이 따로 없었다. 아빠가 오랜만에 병원에 왔던 날, 하필이면 쓰러진 지은이를 의료진이 다급히 응급처치 하고 있었다. 지은이가 눈을 떴을 땐 혼자 펑펑 울고 있는 아빠가 보였다. “왜 우냐고 물어봤더니 무서우셨대요. 아빤 저만 보면 울어요. 난 안 우는데….” 가족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는 중이었다. 지은이는 매일 200~300cc 이상의 피를 쏟는다. 지혈, 수혈 등의 보전 치료를 멈출 수 없다. 또 13번 응고인자 결핍증 외에 또 다른 출혈 원인이 무엇인지 검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말 그대로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쌓여가는 병원비에 막막할 때 학교와 지역, 그리고 우리 병원 사회복지팀의 지원이 이어졌다. 덕분에 병원비 걱정은 잠시 미뤄두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딸이 아픈데 돈 걱정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잖아요. 그동안 도움 받은 걸로 감사히 버텨 왔어요. 천만다행이죠. 고마운 만큼 어서 일어났으면 좋겠네요.” 엄마는 지은이와 눈을 마주쳤다. “노지은, 할 수 있지?” 지은이는 당차게 답했다. “응, 엄마!”

 

병원에서 만난 친구             

아무리 힘들어도 짜증 한 번 낸 적 없는 지은이지만 유독 입을 꾹 다무는 날이 있다. 같이 퇴원하자던 병동 친구들이 먼저 나가고, 문병 온다던 학교 친구들이 못 온다는 문자를 보낼 때다. 그럴 때마다 지은이는 묻는다. “엄마, 난 집에 언제 가?” 

또래 친구들과는 조금 멀어졌지만 더 좋은 친구도 생겼다. 바로 145·146병동 간호사들이다. 수시로 찾아와 언니처럼 이모처럼 웃음과 위로를 건네는 고마운 존재다. 인터뷰 중에도 지은이의 상태를 체크하러 온 간호사마다 “우리 지은이 인터뷰 하네? 얼~” 장난스레 반겼다. 어떤 간호사가 가장 좋은지 슬쩍 물었더니, “간호사 언니들 다 좋은데요?! 제가 퇴원하면 김나연 간호사 언니는 고향인 해운대에 데려가 준다고 약속했고요, 최유리 간호사 언니는 양고기 사준대요. 그리고 김지영 간호사 언니는요…” 줄줄이 읊어대는 지은이는 무척 신나 보였다. 환자가 아닌 딱 열일곱 살 소녀의 표정이다. 언제일지 기약은 없지만 간호사 언니들과의 즐거운 약속이 지루한 병원생활을 버티는 힘이 된다. 날씨 좋은 어린이날 전에 퇴원하면 좋겠다며. 어느새 지은이에겐 마라토너 대신 멋진 간호사가 되고 싶은 꿈도 생겼다. 

 

지은이의 멋진 완주를 응원하며              

병원에선 밤잠조차 힘겹다. 배가 아파 잠 못 이루는 새벽마다 지은이는 창 밖으로 텅빈 대로를 물끄러미 본다. “새벽 대로에 차가 없으면 꼭 마라톤 대회 때가 생각나요. 아프지 않았으면 저 길을 신나게 달렸겠죠? 그럼 1등은 내껀데, 아깝다~” 누군가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남들보다 훨씬 길고 고된 레이스 중이다. 결승선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고 때론 숨이 차오르지만 지은이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웃으며 달리고 있다. 언제까지나 울지도, 지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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